1차(자캐)/퀼립 (탈퇴)
[맥] 우리 보스가 내 동생일리 없어! (W.흐나르)
포도껍질
2015. 3. 7. 20:20
"이런건 쫄따구들한테 맡겨도 됐을텐데요."
아니면 우리 보스, 심심해서 죽을 맛이었나봅니다? 사냥감을 갖고 놀다 이내 목덜미를 물려는 여우의 앞으로 다가갔다. 깨끗한 구두가 모로 누워있는 고깃덩이를 한 번 더 차는 것을 삐죽이며 바라보자 샐쭉하니 웃는다. 탈피한 뱀의 껍질이 남자의 콧노래와 함께 허공에서 사그라졌다. 조용하고 묵직하게. 뱀의 형상을 했던 남자의 웃는 입매로 길다란 송곳니가 보이는 듯 해 섣불리 눈을 마주치지 못하고 시선을 사내의 몸으로 고정한다. 뱀의 허물을 벗은 남자는 맹수가 되어 느긋하리만치 느릿하게 사냥을 하였다.
흥얼거리며 지팡이를 닦는 손으로 채 닦이지 못한 핏줄기가 스며드는 것이 보여 한숨을 쉬었다. 와 그라능교? 저를 발견했을 때와 같이 슬쩍 뜬 눈으로 내려다보는 눈동자는 오묘한 색이다. 은색과 청색이 섞인 흐릿한 청회색의 홍채에는 탈피한 뱀의 껍질이 남아있는 듯 서늘했다. 아 진짜, 보스. 품위 좀 지켜요.
"오늘따라 니답지 않고만."
"나 다운게 뭔데요! 하면서 사춘기 아들내미 흉내라도 내드릴깝쇼?"
벅벅, 하고. 뒤통수를 긁으면 뻣뻣하게 굳은 머리칼들이 손가락에 걸리었다. 시체치우기 싫다구요. 이제는 꿈틀거리지도 않게된 곤죽덩어리를 손가락으로 가리키자 고개를 갸웃거리는 모습이 남자의 덩치와 맞물려 위압감을 자아내었다. 걱정도 팔자데이.
"니한테 치우라 안한다안카나."
"저도 치울 맘 없거든요!"
"그람 뭐가 문제가?"
허차암. 이런 폭력적인 걸 보면 섬세한 제 마음이 어떻겠어요. 맥은 오늘 무서워서 잠도 들지 못할거예요! 양 팔로 스스로를 감싸며 비련의 여주인공 흉내를 내었다. 으응. 그랴. 별 문제없다는 소리고만. 지팡이를 마저 닦으며 고개를 주억거리는 남자에게 불만어린 얼굴로 혀를 내어보지만 제가 기대하는 반응은 역시나 오지 않았다. 깨끗해진 지팡이와 함께 손을 닦아내어 만족스럽게 웃는 남자 곁으로 다가간다. 또 무슨 불만을 토하려고? 옷매무새를 다듬는 사내가 저에게 시선을 돌림과 동시에 그의 손에 들린 손수건을 집어들었다.
"더러운 거 좀 묻히고 다니지 마세요."
"오야. 얼굴에 튀었드나?"
"완전 쥐잡아먹은 얼굴입니다요, 네에."
사내의 한쪽 뺨을 수놓은 핏줄기들 위로 손수건을 대어 비비자 허여멀건한 얼굴로 피가 번지었다. 혈색 좋아보이네요! 반대쪽도 해보시는건 어때요? 콧잔등을 닦으며 물어보면 거절의 말이 나왔다. 손수건이 코를 누르고 있는 탓인지 평소보다 조금 맹한 목소리였다. 이러고 있으니까 좀 연하티가 나는 것 같긴 합니다?
"그라서, 기분 좋나?"
"좋다고 하면 동생 노릇 좀 해주시게요?"
"그건 아이고."
그럼 뭘 물어요. 소녀의 뺨처럼 발그레해진 볼 위로 다시 한번 손수건을 가져다대었다. 말끔히 닦인 피부는 처음처럼 피곤해보이는 색으로 변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