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차(자캐)/퀼립 (탈퇴)
[맥] M : 03 (W.미켈)
포도껍질
2015. 7. 28. 10:59
Rank C : 시체처리
여자는 여전히 고왔다.
반쯤 감긴 눈꺼풀에는 길고 풍성한 속눈썹이 촘촘하게 박혀있었다. 제가 그리도 좋다고 핥아댔던 눈매였다. 또옥, 하고. 벌꿀색의 속눈썹에 엉겨있던 핏덩어리가 여자의 가슴으로 떨어지었다. 저 눈가에 눈물이 고였을 때를 떠올린다. 진한 금색 속눈썹에 걸린 눈물방울은 마치 꿀이 떨어지는 것 같아서, 진짜로 단 맛이 도는지 궁금해 핥아대기가 부지기수였었다.
여자는 빚이 많다고 했다. 아비의 노름빚이 죄 저에게로 넘어와 몸을 파는 신세가 되었다며 담담히 말하는 것에 답지 않게 위로의 말을 건내었던 어느 날을 기억했다. 실제로 여자는 수금날마다 겨우 마련한 돈을 안타까운 눈으로 바라보던가, 그도 아니면 며칠만 말미를 달라고 애원하기가 일쑤였다. 벽에 등을 기대어 앉아있는 듯한 여자를 보기위해 무릎을 쪼그려 앉았다. 반쯤 감긴 눈꺼풀 아래에는 제가 그다지도 좋아했던 눈동자가 없다. 아래를 향한 까만 구멍에 기분이 이상해져 눈을 감기어 주자 뒤에 닿는 것 없는 눈꺼풀에 오소소. 소름이 돋았다.
"우리 이쁜이."
피가 엉겨버린 금발을 쓸면 머리카락이 쉽게 빠져 손가락에 휘감겼다. 손을 털어 망자의 머리칼을 바닥으로 내친다. 떨구어진 실오라기들이 제 발목을 휘감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쭈그려 앉은 채로 발목을 쓸다 여자의 몸통을 바라보았다. 어찌저찌 팔만 꿰어져있는 가운 사이로 보이는 하얀 여체는 온통 피범벅이다. 동그라니 솟은 가슴 아래로 벌려진 뱃가죽사이로 여자의 내부가 훤히 들여다 보였다. 언젠가 다리를 벌려 엿보았던 선홍빛 내부는 제가 생각했던 것 이상으로 많은 것을 담고 있던 것이 틀림없었다.
"진짜 가진건 다 털렸네."
맥은 여자의 이름을 기억하지 못했다. 언제고 들었던 이름은 아마 본명도 아니었을 것이다. 언제나 여자를 향한 호칭은 예쁜이였다. 파리 목숨만도 못한 사창가 여자의 이름을 알아봤자 입만 쓸 따름이었다.
"욕심은 나쁜거지."
소소히 벌어들이는 것에 만족했으면 좋았을걸. 벌려진 가운의 틈사귀로 여자의 젖가슴을 움켜쥐었다. 미지근해져가는 지방덩어리의 느낌이 영 좋지 않아 절로 미간이 찌푸려졌다. 그러게 왜 되도 않는 일을 벌였어. 짐짝을 싸듯 여자의 몸을 가운으로 꽉 여미어 발목을 잡아들었다. 몸통으로 말려내려간 천조각으로 인해 매끈한 다리가 보였지만 시체를 보고 발정하는 취미는 없던지라 그저 제 손에 다 들어오는 가느다란 발목에 감탄한다. 아, 진짜. 요근래 들어 제일 취향인 여자였는데. 손에 들리는 묵직한 무게감이 걸음을 뗄 때마다 질질 바닥에 끌리었다. 돈되는 장기는 다빠져버린 몸뚱이임에도 무게는 꽤 나가는 지라 새삼스럽게 놀라웠다.
쓰레기를 처리하는 공터까지 질질 끌고온 여자의 뒤통수는 아마 볼품없이 까져있을 것이 틀림없었다. 어느새 피까지 다 짜내어 졌는지 그림그리듯 이어지던 핏자욱도 어느 틈엔가 바닥에 그려지지 않았다. 그저 돌뿌리에 걸린 살점만이 까마귀의 먹이가 될 운명이었다. 어이, 영감님. 쓰레기와 함께 시체를 처리해주는 노인을 부르면 쓰레기 더미 아래에서 술병을 든 노인이 실실거리면 걸어나왔다. 어이쿠, 오늘은 곱상한 계집이네요. 아까워라. 제 손에 들린 여자의 하이얀 다리를 보며 웃는 남자를 마주보며 함께 웃었다.
평소처럼 처리해줘. 금화 몇 닢을 튕기자 재빨리 낚아채는 폼이 여느 젊은이 못지 않았다. 영감. 그렇게 돈 좋아하다가 이 꼴 되지 않게 조심하라고. 다리를 툭 내던지며 목을 주무르자 씨익 웃는 남자의 입가 사이로 금니가 번쩍였다.
"제가 이 도시에서만 몇 년인데 그런 걸 모를깝쇼."
"하긴, 그렇지?"
낄낄낄, 이 여자처럼 멍청한 짓만은 말아달라고. 아는 사람 시체 처리하는건 암만 나라도 달갑지 않단 말이지. 얌전히 누워진 여자의 옆구리를 툭툭 치자 노인의 눈이 가늘어졌다. 호오. 무어라 입을 떼려는 남자와 눈을 마주친다. 반쯤 벌려진 남자의 입이 이내 닫히는 것이 보였다. 영감은 눈치가 빨라서 좋아.
"눈치 아니면 이런 짓하고 이 나이까지 살아 있지도 못합죠."
바닥에서 여자의 시체를 들어올리며 쓰레기 더미의 중간에 넣어버리는 노인의 몸짓에는 망설임따위는 없었다. 지금 처리해. 안그래도 그럴 생각입니다. 크레인의 전원을 누르는 노인의 손길이 거침없었다. 기이잉. 흡사 집게처럼 생긴 크레인이 여자와 함께 쓰레기 더미를 들어올려 커다란 철제 트레일러 속으로 떨구는 것이 보였다. 노인이 다른 단추를 누르자 트레일러 양 옆이 서서히 가운데로 조여갔다. 쓰레기가 우그러지며 압축당하는 소리가 밤의 쓰레기장을 채운다. 투욱, 하고. 뼈다귀를 뱉는 개의 모양과도 같이 트레일러가 우그러진 사각형의 쓰레기더미를 내보내었다.
아까와는 다른 크레인이 큐브모양의 그것을 집어 차곡차곡 쌓여진 쓰레기의 탑의 한 쪽 면을 채웠다. 마치 블럭쌓기와 같은 그 속에 몇 개의 인간이 갇혀있는지는 알 길이 없었다.
제 할 일을 마친 노인이 등을 돌리는 것을 보다 저 역시 몸을 돌린다. 지나왔던 길바닥에 듬성듬성. 여자의 머리칼이 살점과 함께 박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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멀리서 보이는 긴 백금발이 괜시리 반가운 날이었다.
"여어, 이쁜이!"
등 뒤로 다가가 어깨를 툭툭치자 놀란 기색없이 돌려지는 고개가 귀염성이라고는 하나도 없어 맥은 웃었다. 뭘 또 그렇게 먹고있냐?
"보면 모릅니까."
"그렇게 먹어대는데도 이쁜 걸 보면 유전자라는 새끼는 참 불공평해, 그치?"
"원래 세상은 불공평한 법이죠."
우물거리는 볼을 꾸욱하니 누르자 눈만 데구룩 굴려 저를 바라보는 눈동자는 올리브색이었다. 그 여자도 녹색 눈이었는데. 텅 비어버렸던 여자의 눈구멍을 떠올리며 손가락에 힘을 주자 쑤욱 들어가는 뺨에서 과연 젊음이 느껴졌다. 우리 이쁜이는 피부도 탱탱하네!
"거."
오늘따라 왜이렇게 치댑니까? 무슨 일 있어요? 평범하게 안부를 묻는 남자의 목소리는 내용과 달리 진심이 전혀 느껴지지 않아 그것에 괜히 기분이 좋아졌다. 나 걱정해주는거야? 비죽이 웃으며 사내의 머리칼을 손가락 사이에 넣고 꼬아보면 저와는 달리 결 좋은 백금발이 사락거렸다.
"배 아직 안부르지?"
"당연한 말씀을."
"가자, 술친구해주면 안주는 양껏 먹게 해주지!"
핫도그의 마지막 남은 조각을 입에 털어넣고 우물거리는 미켈을 두고 한걸음 앞장서자 뒤에서 싸구려 라이터의 휠소리가 들렸다. 틱, 틱. 두어번 부싯돌이 튀겨지자 불씨가 돌았는지 조용한 숨소리가 내쉬어지는 것이 육안으로도 확인되었다. 제 뒤에서 넘실거리며 피어오르다 이내 사그라지는 니코틴 덩어리들을 손으로 휘저었다. 야.
"뭡니까."
"담배 남았냐?"
"허어."
이 형씨가 오늘따라 안하던 짓을 하시네, 진짜. 본인의 품을 뒤적거리며 반듯하니 네모난 담뱃곽을 꺼내는 표정이 말투와 달리 무심하기 짝이 없었다. 길게 잘빠진 손가락이 마찬가지로 새끈하니 잘빠진 하이얀 대를 꺼내 들어 저에게 넘기었다. 라이터도. 말 안해도 줄거니까 재촉마시죠. 툭. 던지어진 라이터를 허공에서 낚아채어 들여다보자 과연 흔히 보이는 싸구려 라이터였다. 평소에 쓰던 지포는 어째고 이거야? 치익, 하고. 볼을 홀쭉하게 빨아들여 불을 붙이며 물었다. 갈색으로 꽉 채워졌던 담뱃대가 주황색으로 타오르며 겉이 타들어가는 것을 보며 숨을 뱉는다.
"집에 두고 왔습니다."
"형아가 새 라이터 사줄까, 예쁜아?"
"사준다면 사양하진 않습니다만."
낄낄낄, 암튼 우리 이쁜이는 사양하는 법이 없어. 불량 신부는 벗겨먹어야 맛이죠. 제 소속을 묘하게 돌려 말하는 남자의 화법에 웃으며 라이터를 돌려주었다. 뭐어, 어차피 내 돈도 아니고. 용돈벌이로 얻은 돈이니까!
"이 정도는 우리 예쁜이한테 쓰기 아깝지 않달지~."
"그거 고맙군요."
엄지와 검지로 담뱃대를 집어 들며 한껏 들이켰던 니코틴의 연기를 내뱉었다. 누가 그러던데. 담배연기는 한숨 모양이라고. 이유없이 그저 떠오른 말은 꽤나 입 속을 헤집어놓았다. 혀 위로 굴려지는 쌉싸름한 맛이 영 어색해 반절정도 남은 담배를 물어 한번에 빨아들이면 금새 필터까지 타오르는 모양이 덧없었다.
"따라와, 안주가 맛있는 곳이 새로 생겼더라고."
"라이터는 안사줍니까?"
생글생글 웃는 낯으로 말하는 사내에게 가운데 손가락을 올려다 주었다. 으응. 오늘은 기분이 영 잡쳐서. 대신 맛난 거 사줄테니까 그거나 먹고 가. 그대로 등을 돌려 길을 걸었다. 제 뒤로 담배연기가 흘러나와 저를 앞서 간다. 우리 예쁜이 폐는 분명 시커멀게 틀림없다니까! 소리내지 않는 생각을 안주삼아 웃음을 배어물었다.
올려다 본 하늘에는 반짝이는 전등이 가로등과 함께 밤길을 수놓았다. 입맛을 다시자 코 끝으로 제가 피운 담배 냄새가 올라왔다. 간만에 피운 담배는 여전히 무슨 맛인지 알 수가 없다. 손을 튕겨 필터밖에 남지 않은 꽁초를 어딘가로 던져버렸다. 등 뒤로는 여전히 자박거리는 발소리가 저를 따라 붙는다. 알싸한 담뱃내가 남은 혀와, 찝찝하게 죽은 불씨 냄새가 배어버린 손가락과 등 뒤로 따라붙는 적대 세력의 예쁜이.
언제나와 같은 그저 그런 일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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