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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황 리퀘: 최강자전 현우 버전으로 사람 죽이고 온 것을 은찬이에게 들킨 뻔한 (by.캣시스님)
+) 예전에 트위터에서 주웠던 단어팔레트 추가. 연분홍 팔레트 사용.
리퀘 겸 현우은찬 전력 60분. 60분 안에 잘라서 어정쩡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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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곤하다. 빠르게 지나쳐가는 바깥 풍경과는 달리 느리게 걸어가는 시간의 정강이를 차버리고 싶을 정도의 지겨움이었다. 작게 한숨을 내쉬자 운전대를 잡고 있던 수행인이 물었다. 창문을 좀 열까요? 고저 없이 평탄한 목소리는 평소 자주 들었던 것이건만 오늘은 그마저도 느릿거리는 느낌이라 마음에 들지 않았다.
-아닙니다. 그냥 빨리 가주세요. 좀 쉬고 싶군요.
살짝 손을 흔들자 알았다는 듯이 고개를 주억거린다. 방금 전까지도 집안의 버러지들이 가져온 가짜 후계자의 모가지를 비틀었던 손에는 손톱자국이 길게 나있었다. 가품주제에 천박하게. 조용히 죽지 못하고 흔적까지 만들었나. 미처 보지 못했던 상처는 그것을 인식하자 급격하게 쓰라려 왔다. 손가락을 두어 번 접었다 펴자 피부를 따라 당기는 상처는 생각보다 깊은 모양인지 조금씩 피가 배어 나오기 시작하였다.
-의원에 들리시겠습니까?
가만히 손등을 바라보고 있는 폼이 신경 쓰였는지 묻는 수행인에게 다시 한번 손을 흔들었다. 더 이상 잡소리 말고 가라는 표현이었다. 다행히 금방 알아 듣고 제 할 일에 집중하는 수행인 덕에 짜증은 내지 않아도 될 듯하였다. 가만히 엄지와 검지를 마주 비벼보았다. 손을 움직일 때마다 손등이 아려왔다. 모든 것이 귀찮고 피곤하고. 단지 따뜻한 아랫목에서 누워 쉬고 싶은 기분에 몸을 자동차 시트에 기대었다. 점점 인가가 뜸해지는 바깥 풍경 사이로 천천히 눈발이 먼지처럼 흩날린다. 눈에 익은 길 위로 녹지 않고 떨어진 싸락눈이 하나 둘 내려 앉는 듯 하였다.
가만히 눈을 감았다 떴다. 눈앞에서 흔들리는 앞머리를 가볍게 털며 매무새를 정돈하였다. 백미러에 비친 모습을 확인한다. 언제나와 같은 얼굴과 검은 꽃이 수놓인 먹색 비단옷이 제 스스로 보기에도 단정해 보여 안정감마저 들었다. 점점 가까워지는 붉은 점은 어느새 동그란 뒤통수가 되어있었다. 세워주시죠. 뜬금없이 내뱉은 말에도 수행인은 아무런 반문 없이 자동차의 속도를 줄여갔다. 비상등의 스위치를 누른 채로 속도를 줄이며 갓길로 가까워지는 차의 기척을 느낀 모양인지 당신이 뒤를 돌아보는 것이 보였다. 까맣게 칠해진 자동차 유리 속의 나를 보지 못함을 알고도 나는 웃었다. 걷다 못해 바닥에 늘어져 꾸물꾸물 기어가던 시간이 그제야 제대로 흘러가기 시작한다.
정류소 앞에 차가 세워지자 빠르게 내리려 하는 수행인에게 손을 들어 제지하며 제 손으로 문을 열었다. 왕, 하고. 양인지 돼지인지 분간하기도 힘든 짐승이 꼬리를 흔들며 반가운 체를 하였다. 이빨 달린 짐승은 별로 좋아하지 않지만 오늘은 네가 그와 산책을 한 덕에 그를 일찍 보게 되었으니 봐주마. 닿을 리 없는 선심을 쓰며 시선을 올린다. 꽃잎처럼 날리는 눈송이는 어느새 그쳐 바닥에 자국눈으로 깔리었다. 걸음을 떼면 제 신발의 밑창과 같은 모양이 만들어지는 눈을 밟아 앞으로 한걸음 나간다. 가까워지는 거리에 저도 모르게 표정이 풀린 모양인지 푸스스, 하고. 입새로 웃음 새는 소리가 흘러나갔다. 열리는 차 문에 두어 걸음 비켜섰던 당신은 저를 알아보고는 이내 현우잖아, 라며 배시시 웃었다. 평소에도 긴장감이 느껴지지 않은 얼굴이 웃음소리 없이 웃는 것은 참으로 볼만하였다.
-집에 갔다 오냐?
-크흠. 그렇습니다. 주작공자는 멍걸이 산책입니까?
-뭐어.
보는 바와 같이. 장난스럽게 씨익 웃으며 검은 봉지를 들어올리더니 이게 뭐게? 라고 묻는다. 답이 뻔한 질문에 팔짱을 끼고 고개를 들어 당신을 내려다보았다. 정확히는 깔아다 보았다는 것이 더욱 정확한 표현이었겠지만 당신은 그것을 굳이 지적하지도 기분 나빠하지도 않았다. 자꾸 그러니까 제 버릇이 점점 없어지는 겁니다, 공자. 스스로도 제가 무례하다는 것을 알고 있다는 것이 우스웠지만 그냥 넘어가기로 하였다.
-무슨 그런 당연한 것을! 보나마나 청룡공자의 심부름이겠지요.
-아니 난 그러니까 그 내용물이 뭔지 맞춰보란 거였는데.
-제가 무슨 투시안이라도 갖고 있는 줄 아십니까?
-그러지 말고 장단 좀 맞춰줘라 쫌!
끄으응, 하고. 웃는 얼굴 사이로 난처함이 스쳐 지나갔다. 답답한 듯 흔드는 비닐봉지는 제법 무거운 것이 들어있는 듯 꽤나 소리가 묵직했다. 사실 소리가 아니더라도 검은 비닐끈을 따라 발갛게 부어 오른 당신의 손가락만 바도 가늠할 수 있는 무게였다. 뭔지는 모르겠지만 오늘 저녁은 꽤나 기대되는군요. 만족한 얼굴로 끄덕이자 결국 이마에 핏줄이 오른 당신이 앓느니 내가 죽지. 라고. 허탈하게 중얼거리는 것이 보였다. 그냥 앓는 것이 저는 더 좋습니다만. 작게 내뱉어진 말은 실뱀처럼 바닥을 타고 당신의 다리를 동아맨 모양이었다. 화가 난 듯한 폼새로 척척척 걸어가던 당신의 발걸음이 멈춘 것을 보면 그러한 것이 틀림없었다.
-뭐라고?
-공자가 죽는 것은 싫으니 그냥 앓아달란 말이었습니다만.
휘휘 휘파람을 부는 척 눈동자를 위로 굴리며 어깨를 으쓱거리자 크게 날숨이 쉬어지는 소리가 났다.
-너란 놈은 매몰찬건지 부끄러움을 모르는 건지 가늠이 안된다.
-잘됐군요. 그렇게 점점 제 미궁 같은 매력에 빠져가는 겁니다.
장난스럽게 고개를 주억거렸다. 당신은 이번에도 어쩔 수 없다는 듯이 웃는다. 처진 눈매가 접히며 더욱 처지는 모양은 제가 제일 좋아하는 얼굴이었다. 기분이 좋아져 손을 내밀었다. 주시죠. 제가 들겠습니다. 네가 웬일이냐는 칭찬에 콧대가 높아져 저는 원래 상냥한 사람이었지요, 하자 다시 표정을 구기는 것까지도 전부 좋아 그저 웃었다.
-근데 너 손에 이거 뭐야, 다쳤어?
-네?
제 손에 비닐봉지를 넘겨주려다 본 것인지 길게 난 손톱자국을 가리키는 눈매가 동그랗게 변한다. 아아, 이거요. 웃는 낯으로 손을 한번 털었다. 집에 갔더니 친척어른이 개를 가져왔지 뭡니까. 얌전한 줄 알았는데 상처를 냈더라고요. 저도 오다가 발견했습니다. 피가 배어 나온 손등을 끌어가서 유심히 보는 통에 저러다 눈알 빠지지, 라는 실없는 생각을 하며 뇌를 거치지 않은 변명을 툭툭 내뱉었다.
-개도 싫어하는 놈이 왜 괜히 만져서 상처나 만들고 와.
-친척 어른이 꼭 만져보라고 해서요.
-끄응. 집에 가서 소독하자. 이건 그냥 내가 들게.
넘겨주려던 검은 봉다리를 다시 본인의 손목에 걸며 제 손목을 잡아 이끈다. 남자답네요, 공자. 다시 한번 반하겠습니다. 끌려가는 와중에 빙글빙글 웃으며 말하였다. 무언가 멍걸이와 취급이 비슷해진 것 같은 느낌이 들었지만 무시하였다. 여기서 더 반하면 곤란한데. 고개를 돌려 웃는 얼굴에 순간 진심으로 다시 한번 수렁에 빠졌다고 생각했다.
-주작공자.
-응?
-그거 압니까.
사모하고 있습니다. 처음 고백했을 때와 같이 평이한 어조로 말하였다. 아니, 평이했던가? 당신 앞에만 서면 절제가 되지 않는 감정들이 흘러 넘치는 탓에 나는 항상 내가 정상적으로 말하고 행동하는지도 의문이었다.
-멍청하긴.
-뭐라고요? 세상에 주작공자한테 멍청하다는 소리를 듣다니 제가 죽을 날이 다 된 모양이군요.
-나도 아니까 굳이 말 안 해줘도 된다고.
-네?
-아니면 내가 미쳤다고 첫 연애를 시커먼 사내놈이랑 하겠냐.
나도 너 좋아해. 엄청. 땅에 닿기도 전에 제 몸에 부딪힌 단어들이 아파 걸음을 멈추었다. 저를 따라 함께 멈추는 몸이 뒤돌아 얼굴을 내보이는 것이 천천히 시야에 박혔다. 당신은 언제나처럼 곤란한 얼굴로 웃고 있었다. 그러니까.
-싸우고 오지마.
상처 난 손등을 차마 덧날까 만지지 못하는 부모처럼 당신은 그렇게 내 거짓말을 서투르게 더듬었다. 역시, 좋아해요. 다시 한번 말하자 당신은 웃었다. 당신의 너털웃음을 따라 머리카락이 불새처럼 날개짓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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