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베타서버는 운영자 말투가 존나 참 게이같아."
호모들전용 서버라 그런가. 스마일을 통해 확인한 공지사항을 읽어내려갈수록 소름이 돋아 인상을 찌푸렸다. 마음에 드는 것이라고는 이번 이벤트가 마담과 관련이 있다는 문장 뿐이다. 눈동자를 위로 굴리며 클럽의 주인을 떠올린다. 적당한 체구에 들어갈 곳은 들어가고 나올 곳은 확실히 나온 풍만함이 인상적이었던 기억이 났다. 제 취향과는 상당히 동떨어져있지만 객관적으로 보아 매력적인 여자였다. 실제 사람이 아니라는 것이 문제라면 문제였지만.
등이 아파와 기대어 앉아있던 의자에서 몸을 떼었다. 클럽 맵을 선택하자 접속 여부를 묻는 반투명한 창이 떠오른다. 별 생각 없이 yes를 누르면 시야가 이지러들었다. 음악이 쿵쿵거리며 시끄럽게 울리는 소리가 점차 뚜렷해진다. 흔들리는 풍경으로 머리가 아픈 착각에 빠지었다. 빙글거리는 세상이 싫어 꾸욱 감았던 눈을 뜨자 점점이 반짝이는 지하의 공간이 보인다. 저번 커플이벤트 이후로 처음 방문한 클럽은 여전히 농도 깊게 끈적거리는 어두움이 발 아래로 가라 앉아있었다. 그 짙은 그림자 사이에 어울리지 않게도 가벼운 분위기가 알맹이처럼 두둥실 맴도는 것이 참으로 이질적이었다. 이게 좋은 거지. 현실과 유리된 감각. 하루종일 일에 쫓기어 식사도 수면도 모두 엉망진창으로 바짝 조여지는 생활에서는 느낄 수 없는 자유분방함이 질척하게 녹아있는 공기가 마음에 들었다. 지난 번과 달리 군데군데 보이는 여성 NPC 들이 무척이나 눈을 즐겁게 했다.
2.
보라색 조명 아래로 헐벗은 인공지능들이 몸을 밀착시키며 섹스어필을 하는 모습이 사방에서 보여졌다. 이 중에 몇 명이나 플레이어일까. 생각해봤지만 의외로 홀에 나가 춤을 추는 사람들 중에는 유저가 눈에 띄지 않았다. 룸잡고 떡치나. 하긴 거의 게이들일테니 여자랑 춤추는 것도 관심없을라나.
"저렇게 지들끼리 추는 거면 몰라도."
녹은 사탕처럼 달고 끈끈하게 서로를 더듬는 남정네들을 지나치며 혀를 내민다. 건장한 사내 둘이 저러고 있으니 세상이 참 말세였다. 대체 누가 여자역이야? 두명 다 근육질의 사내놈들이라 서로 물고 빠는 것이 상상되질 않아 머리를 흔들었다.
"마티니. 젓지 말고 얼음이랑 같이 흔들어서. 베르무트는 스윗으로 해주고."
간만에 클럽에 온 기분이라도 낼까 싶어 평소에는 잘 마시지 않는 칵테일을 주문해본다. 바텐더가 고개를 끄덕이는 것을 확인하고 주위를 둘러보면 한쪽 구석에 도도히 기대어 서있는 마담이 보였다. 온통 보랏빛인 공간에 어울리게도 온통 자주색으로 치장된 몸이었다. 마티니, 나왔습니다. 올리브가 담긴 투명한 술이 작은 잔에 담겨 제 앞까지 밀어졌다. 향긋한 향이 기분 좋아 홀짝이자 역시나 쓴 맛이 강했다. 대체 이런걸 왜 돈주고 사마시는지 알수가 없다니까. 머리까지 찌르르하게 울리는 알콜내에 미간을 찌푸려 고개를 흔들었다. 쿡쿡, 하고. 옆에서 작게 웃는 소리가 났다.
"뭐야. 너냐?"
"안녕하세요."
오랜만이네요. 안부를 묻는 남자는 정말 오랜만에 만난 지인을 만나는 듯한 태도여서 헛웃음이 나왔다. 야, 우리 딱 한번 얼굴 본 사이거든.
"왜 친한 척이야."
"이런... 죄송해요. 그래도 아는 얼굴을 보니 반가워서요."
"하하, 지랄. 이벤트 끝나기도 전에 말도 없이 로그아웃해버린 주제에 낯짝도 두꺼우셔."
"으음. 그때는 미안했어요."
"알면 됐어."
온통 하얀 남자는 닉네임에 어울리는 고상함으로 미소지었다. 그 천사같은 얼굴에 왜인지 질리는 느낌이라 잔에 담긴 마티니의 향을 맡았다. 냄새를 맡는 순간 방금 전의 쓴맛이 강하게 떠올라 더는 마시고 싶지 않은 기분이 되어버렸지만. 더 안마셔요? 턱을 괸 채로 저에게 몸을 틀은 엔젤이 순하게 물어본다. 나 원래 술 싫어해. 주랴? 마시고싶어? 찰랑거리는 술잔을 밀어주자 상냥하게도 손을 들어 사양한다.
"하민씨도 메시지 창보고 온거예요?"
"어어. 히든 스테이진가 뭔가. 재밌어보여서."
"그렇군요."
"그쪽도 그거때문에 왔어?"
그럼 같이 찾을래? 어느 때고 시기를 가리지않고 불쑥 불쑥 찾아오는 변덕이 고개를 들어 남자와 일종의 동맹을 제안해본다. 사실 혼자하는 것보다 둘이 하는게 빨리 끝내고 돌아갈 수 있을 거라는 계산이 깔려있었지만 하민이나 남자에게 그런 사족을 구태여 설명 하고 설명 들을 건덕지는 애초부터 존재하지 않았다.
3.
"마담, 요새 재밌는 소문이 있던데."
4.
메시지가 시킨대로 키워드를 말하자 카멜리아에게서 소문의 진상을 파헤쳐달라는 요청이 들어왔다. 무슨 RPG게임같네. 소싯적에 몇번 해보았던 게임들을 상기시키며 클럽 내부를 돌아보기로 하자 엔젤은 나른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다지 의욕있어 보이는 행색은 아니었지만 저 역시 그렇게 목매단 퀘스트는 아닌지라 그냥 그러려니 하였다.
"역시 탐색은 화장실이지."
조사하면 떠오르는 장소를 말하자 사내는 웃었다. 여전히 성자같은 미소였다.
5.
"아, 윽, 응 으응, 흐, 하아."
"후으, 야, 밖에 다 들, 으, 려."
"어 시발 존나 입체 서라운드로 짱짱하게 들린다."
"굳이 숨길 생각도 없는 것 같은데요."
은은한 보랏빛이 감도는 화장실은 대부분의 칸이 닫혀있었다. 그 닫힌 칸막이 안에서 각자 다른 목소리들이 열심히 실황중계들을 하고 있어 하민은 치를 떨었다. 미친, 떡은 호텔가서 쳐! 어설프게 닫힌 문짝 하나를 걷어차자 안에서 식겁하는 소리와 함께 나지막한 욕설이 흘러나왔다. 땅을 기는 듯한 수컷의 욕지거리에 다시 한번 문짝을 차주면 그제야 안쪽이 조용해지었다. 철벅거리며 살이 부딪히는 소리들는 도무지 끊길 생각을 하지 않았지만 앙앙거리는 사내새끼 목소리가 들리지 않는다는 것만으로도 정하민은 만족했다.
"재수없게 진짜. 야, 대충보고 나가자."
"네에. 그래요."
화장실 본연의 목적을 상실한 채 모텔 방이 되어버린 공간에서는 뭘 뒤져도 제대로 나올 것 같지 않아 짜증스럽게 내뱉으면 엔젤이 또 다시 고개를 주억거렸다. 뭘해도 긍정의 말이 돌아오는 느낌이 퍽이나 이질적이라 저도 모르게 기분이 날카로워져 엔젤을 쳐다보았다. 왜 그러시죠? 나긋이 웃는 미소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아무것도 아냐. 팩하니 돌아 비어있는 칸막이를 열었다. 옆 칸에서 물고 빠는 소리가 더욱 적나라하게 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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