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왼쪽을 봐도 오른쪽을 봐도 변하는 건 없었다.
 
 
 
2.
 
이 곳은 진짜 남탕이었다. 
 
 
 
3. 
 
한달정도 전에 신청해놓은 베타테스트 서버는 야근과 특근에 쫓기어 들어가보지도 못했다. 좀 더 정확히 말하자면 정하민은 제가 그런 걸 신청했었다는 사실조차도 잊고있었다. 선발메일이 온 후 이름이며 뭐며 자잘한 것들을 정하기 위해 잠깐 접속했던 것 말고는 기어를 만져보지도 못하고 잠들기가 다반사였기 때문이다. 덕분에 하민은 요즘 많이 쌓여있었다. 여자의 매끈한 살결이 손 안에 감겨오는 느낌이 그리웠다. 핸드폰 주소록을 뒤져보아도 마땅한 여자는 없다. 당연한가. 그도 그럴 것이 요즘 여자들은 안전하고 확실한 섹스를 원하는터라 미라클 내가 아니면 몸을 잘 허락하지 않았다. 저 역시 이 나이에 애아빠라는 타이틀을 얻기에는 영 거북스러워 굳이 현실에서의 관계를 고집하지 않기도 하고. 진짜로 하는 게 확실히 더 맛이 있지만 그 정도도 참지 못하면 인간타이틀 반납하고 고릴라나 되는게 낫지. 언제나처럼 의자에 앉아 돔을 내리며 생각했다. 시야가 까맣게 내려앉았다.
 
 
 
4.
 
이 호텔이 원래 이런 이름이었나. 맵을 선택하기 위해 띄운 창에는 생소한 이름의 장소들이 여럿 있었다. 접속하지 않던 사이 꽤나 업데이트가 되었다고 느끼며 호텔을 선택한다. -접속하시겠습니까? 불투명히 떠오르는 창에서 당연하게도 YES를 눌렀다. 풍경이 이지러지며 호텔 프론트로 변해가는 과정은 언제보아도 어지러운 광경이었다. 
 
 
 
5.
 
"좆같네."
 
 
풀썩, 하고. 푹신한 쇼파에 몸을 내던지며 한숨처럼 욕설을 흘렸다. 왼손목을 들어 올려 접속한 스마일의 친구목록이 깨끗하다. 주기적으로 관계를 맺던 여자들이 한명도 빠짐없이 저를 차단했을리는 없고, 그제서야 이 맵의 이상한 점이 눈에 뜨이기 시작했다. 남자, 남자, 남자. 그리고 또 남자. 들려오는 목소리는 하나같이 여자의 것이라고는 볼 수 없는 낮은 음성들 뿐이었다. 호텔 프론트에 원래 이렇게 여자가 없었던가로 머리를 싸매보지만 결국 현실을 받아들였다. 나는 무슨 생각으로 베타서버에 신청서를 냈던거지. 거칠게 뒤통수를 긁으며 자리에서 일어나 마지막으로 주위를 둘러보았다. 암만 눈을 씻고 보아도 저와 같은 게 달린 것이 분명할 놈팽이들 뿐이었다. 우웩, 혀를 빼내어 토하는 시늉을 하며 미련없이 등을 돌린다. 이왕 접속한거 사우나나 한번 하고 가자. 차라리 접속을 끊고 현실의 사우나를 가는 것이 나을 법도 했지만 한번 집에 들어온 몸을 밖으로 몰아내기에는 날이 너무 추웠다.
 
기분만이라도 내고. 내일 일어나서 목욕탕이나 가자.
 
근 한달만에 받은 온전한 주말을 오로지 본인을 위해 쓸 것을 다짐하며 휘적휘적 엘리베이터를 향해 걷는다. 사우나 시설이 있는 층수를 확인하는 얼굴이 모든 것을 내려놓은 듯 하였다.
 
 
 
6.
 
나무로 된 두꺼운 손잡이를 당기자 후욱, 하고. 사우나 안의 뜨거운 공기가 바깥을 향해 몰려나왔다. 아, 좋다. 가만히 있어도 온 몸이 노곤해지는 온도였다. 터벅거리는 발걸음으로 안을 향하자 생각보다 한산한 내부가 보였다. 다들 물고빠느라 사우나는 잘 안오나. 하긴 호텔의 존재의의는 그 짓거리뿐이긴 하지. 어찌됐든 나야 좋네. 미라클 안에서까지 사람에 치이고 싶지는 않았던 터라 저 외에는 사람 비슷한 것도 보이지 않는 것에 기분이 조금 풀렸다.
 
 
'아, 존나 좋다.'
 
 
사우나의 온도는 과하지 않았다. 숨을 들이쉴 때마다 목구멍을 태우는 것 같았던 현실의 사우나를 생각하자 어쩌면 미라클 내에서 사우나를 즐기는 것이 더 나은 방법이라는 생각까지 든다. 축축하게 젖은 머리칼이 거슬려 고개를 털면 뜨거워진 머리카락이 볼에 와 붙었다 떨어지기를 반복했다. 묶고 들어올걸 그랬나. 뺨에 들러붙은 머리카락 덩어리들을 떼어내 한손으로 묶는 시늉을 해보지만 근처에 머리를 묶을 수 있는 무언가가 있을리는 만무했다. 결국 목덜미로 머리칼을 쓸어내리며 손을 떼었다. 
 
그나저나 베타서버는 어디서 정보를 찾아봐야하지. 아무래도 당분간은 원래의 미라클에 접속할 수 없을테니 앵간한 것은 모두 다 테스트서버에서 해결해야했다. 공식홈페이지에 가면 있나. 양반다리를 한 채로 허벅지를 가린 타올을 가지런히 펼치며 빙글빙글 머리를 굴린다. 옆에 사람이라도 있으면 물어볼텐데. 아쉬운 마음이 들어 끄응, 하고. 작게 앓는 소리를 내었다. 아무나 좀 들어와라. 바람을 담아 문을 바라본다. 생각보다 제 운은 나쁘지 않은 모양이었다. 뇌를 유영하던 단어들이 사우나 밑바닥으로 떨어지기 전에 문 틈새가 열리는 것을 보면.
 
 
"어."
 
 
눈을 내리깐 채로 들어오던 남자는 누군가가 있을 것이라고 예상하지 못하였는지 잠깐 주춤거렸다. 뭐야, 양키인가. 딱 봐도 이국적으로 보이는 얼굴에 저도 모르게 남자를 훑어보았다. 젖은 밤색 머리칼 아래 옅은 녹색 눈동자가 있다. 머리카락보다 약간 연한 색의 구릿빛 몸체가 물에 젖어 번들거리는 것이 꽤나 강한 섹스어필로 작용할 듯 싶었다. 문신쩌네. 남자의 양 팔을 가득 메운 그림에 슬쩍 제 팔뚝을 내려보았다. 밋밋하니 허연 팔뚝이 눈에 들어왔다. 나도 좀 아바타를 바꿔볼 걸 그랬나. 제 주변에는 문신한 사람이 없는지라 화려한 팔뚝의 사내가 그저 신기했다. 물론 제 성격 상 오래 갈 호기심은 아니었지만. 

근데 희안하네. 뭔가 낯이 익은데 기억이 안나. 같은 수컷에게 금새 흥미가 식을 법도 하건만 어딘가 찝찝하게 느껴지는 기시감에 인상을 찡그렸다. 시발, 어디서 봤지. 뒤통수를 매만지며 열심히 짱구를 굴리는 사이 남자는 제 맞은편에 와 앉았다. 아니, 부담스럽게 왜 마주앉고 지랄이야. 사내의 눈매는 원래 그렇게 생겨먹은 것인지 아니면 진짜로 저를 관찰하는 것인지 상대를 지긋이 바라보는 눈길이 매우 거북스러웠다. 어쩐지 탐색당하는 기분이라 잇새로 욕지거리를 내뱉으며 몸을 옆으로 틀었다. 기억이 나질않는 것을 보면 저에게 중요한 인물은 아니었다는 소리였다. 무시하자. 무시. 무시.
 
 
 
7.
 
어쩐지 점점 노곤해져 깜빡깜빡 졸음이 찾아왔다. 여기서 자면 죽을지도 몰라, 라는 생각보다 따끈하니 좋은 것이 가상현실 내에서도 피로회복이 되는 것이 신통하다는 느낌이 더욱 커 몰려 오는 졸음을 굳이 참지않았다. 저 남자도 그런가. 말없이 앉아있는 남자를 바라보았다. TV에서나 나올 법한 짙은 근육질의 몸이 여자 여럿 울렸을 몸이라고 생각했다. 물론 지금 저가 접속해 있는 이곳은 게이천국이었지만.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아주 약간 잠이 깨었다.
 
 
"저기."
"음?"
 
 
바른 자세로 꼿꼿이 앉은 남자를 향해 몸을 돌렸다. 궁금한 건 바로 물어봐야 직성이 풀리는 제 얼굴은 아마 상대방이 보기에 그다지 좋은 표정은 아닐 것이 틀림없었다. 
 
 
"몸이 좋네."
"그것 참 고맙군."
 
 
칭찬이겠지? 하고, 확인하듯 웃는 남자의 얼굴은 확실히 매력적이었다. 진짜 여자 엄청 후렸을 새끼일세. 
 
 
"여기, 게이용 미라클이지?"
"...그렇지."
 
 
불쾌할 법한 질문에도 대답해주는 남자의 몸을 다시 한번 훑어보았다. 그쪽은. 하고, 입을 뗀 남자가 말을 잇는다. 여기에 처음 접속했나? 이쪽 취향은 아닌것 같은데. 뱀발처럼 달린 말을 끝내며 저를 빤히 바라보는 녹색 눈동자가 예뻤다. 뭐어. 그렇지. 고개를 끄덕이며 수긍한다. 여전히 알수없는 기시감이 느껴지는 남자였다.
 
 
"그보다, 당신. 인기 많아?"
"뭐?"
"아니. 몸이 존나 좋길래. 남자보다는 여자한테 인기있을 법한 몸 아닌가?"
 
 
아니면 역시 여자한테 인기 많은 쪽이 남자한테도 인기 많은가? 느낀 점을 가감없이 말하자 남자가 웃는 것이 보였다. 입가 사이로 보이는 치아가 육식동물의 그것이라고 생각했다.
 
 
"내 몸이 인기 있어보이나?"
"하핫. 까고있네. 몰라서 묻는건 아니겠지?"
 
 
누가 봐도 여자 쩔게 후리게 생겼거든, 당신? 웃으며 머리를 털었다. 물기가 가신 머리카락이 푸석푸석했다. 자그마한 바가지에 떠온 물을 머리 위로 붓자 그제야 건조함이 가신다. 남자가 눈동자를 왼쪽으로 굴리다 이내 웃었다. 궁금하면.
 
 
"직접 해보는건 어때?"
"뭐를. 섹스를?"
"그거 말고 여기서 또 할게 있나."
"그쪽이 대주나?"
 
 
제가 생각해도 어이없는 말을 내뱉으며 울대를 울렸다. 남자의 눈썹이 꿈틀거리는 폼이 꽤나 달갑지 않은 말을 들은 듯 했다. 하기사. 저와 남자의 체급차는 제가 위로 간다고 해도 문제였다. 저 몸집에 비해 내 아들내미는 작을 것 같단 말이지.
 
 
"그 자신감은 마음에 드네."
 
 
나른한 육식동물처럼 남자는 여유있게 웃었다. 하민 역시 괜시리 유쾌해져 입을 벌렸다. 웃을 때마다 습기찬 공기가 목줄을 죄여와 무언가 들뜬 기분이 된다. 바닥에 철퍼덕 앉아있던 몸을 일으켜 남자가 앉아있는 곳까지 발걸음을 옮기었다. 제 보폭으로도 얼마 떨어져있지 않은 거리는 금새 좁혀졌다. 외노자양반, 내가 뒤는 못따여줘도 말이야.
 
 
"사내새끼 입술이 무슨 맛일지 궁금하긴 해."
 
 
몸을 숙여 올리브색의 눈동자를 마주본다. 아무 말 없는 침묵이 이어졌다. 반응 존나. 재미없네, 시발. 끊어질 생각을 않는 적막이 부담스러워져 시선을 돌렸다. 어딜, 하고. 시선이 엇갈리는 찰나에 남자의 커다란 손이 제 뒷목을 끌어당긴다.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입술이 부딪혔다.
 
물어뜯을 듯이 이를 세워 입술을 물다가 이내 벌려져 있던 입새로 혀가 파고들었다. 무방비하게 가라앉아 있던 정하민의 혀가 돌연 끌어올려졌다. 마치 싸움을 거는 것 같은 움직임이었다. 허, 이것 보게? 그러나 당황은 찰나였고 대응은 순식간이었다. 시발. 그래. 해보자고. 손을 뻗어 남자의 어깨를 잡았다. 땀인지 습기인지 모를 것들로 미끈거리는 탓에 몇번인가 손이 미끄러져 남자의 몸에 상처를 남겼지만 개의치않았다. 게임에서 다치는게 뭐 대수라고. 의미를 알 수 없는 호승심이 끓어올랐다. 제 혀에 힘을 주어 휘감고 있던 남자의 혀를 아래로 내리누른다. 서로 리드하려는 혀를 제압하기 위해 거칠게 움직이는 것이 지속되자 턱이 아려왔다. 이윽고 작은 살덩이들의 놀림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뿌리까지 얽혀드는 농밀한 것으로 변해갔다. 츄, 츄읏, 혀와 입술이 빚어내는 소리가 축축하게 귓가를 때린다. 충동적으로 벌려진 입맞춤이 이어지는 동안 그들은 눈을 감지 않았다. 
 
얽히는 시선이 누구 하나 다를 것 없이 주도권을 요구한다.
 
후우, 하고. 긴 숨이 입술 틈으로 새다가 곧 입술이 떨어져 나갔다. 혀가 저릿저릿했다. 그래서, 감상은? 포식자의 얼굴로 묻는 남자를 향해 웃었다. 상상했던 것 이상으로.
 
 
"좆같네, 새끼야."
 
 
가운데손가락을 자연스럽게 펼치며 혀를 내밀었다. 입술을 핥는 남자의 혀를 잡아 빼버리고 싶단 생각을 하며 반걸음 뒤로 물러나면 남자는 여전히 맹수처럼 웃고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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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포도껍질 2015. 7. 28. 11: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