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아니, 아니야. 차가 고장났다니까."
이, 개시이-발. 내가 정비사야? 왜 고장났는지 내가 어떻게 알아. 귀에 꽂은 블루투스 너머로 들려오는 목소리에 짜증을 내었다. 한껏 날이 선 대답에 당황했는지 귀로 울리는 상대방의 톤이 작아졌다. 욕을 벌고 지랄이야, 이 개새는. 자동차가 고장났다. 하필이면 공항이며 거래처며 외근 돌아야 할 곳이 한가득인 날이었는지라 자차없이는 개고생을 할 것이 뻔하였다. 몰려드는 깊은 빡침에 친구놈에게 전화를 걸어 화풀이를 하면 이 호구새끼는 또 걱정한답시고 가만히 욕이나 처먹고 있다.
-그럼 어떡하려고?
"뭘 어떡해."
-차 끌고 나갈까?
"일 안하냐, 병신아.
-나야 뭐 남는게 월차잖아.
그리고 그 월차가 남는 이유는 그걸 우리 맘대로 못쓰게하는 회사때문이지. 혀를 차며 말하자 탈력한 듯 흐물거리는 목소리가 대답했다. 그건 그래... 안그래도 추운 날에 축축 처지는 목소리까지 들으니 남은 체온마저 빼앗기는 기분이 들어 목을 더욱 움추렸다. 거래처까지 한방에 가는 버스가 정차하는 정류장은 회사와 상당히 거리가 떨어져 있었다. 그래봤자 걸어서 15분 거리밖에 되지 않았지만 추운 것을 싫어하는 저에게는 그마저도 고역이었다.
"추우니까 의욕떨어지게 하지말고 끊어, 새끼야."
-차 안빌려도 되겠냐?
"정류장 다왔어. 정 태워주고 싶으면 내 퇴근시간에 맞춰오던가."
-나 야근인데.
"나도 야근이거든 시발아.
시덥잖은 소리 그만하고 끊어. 나중에 술이나 한잔해. 으레 그렇듯 언제가 될지 모르는 약속을 하며 블루투스의 전원을 끈다. 몇걸음 앞까지 정류장이 가까워져있었다. 버스 좀 빨리와라. 코 끝이 시려 목도리를 끌어올렸다. 진짜 존나-
"존나 춥네."
입을 다 떼기도 전에 다른 곳에서 제가 해야 했을 말이 흘러나왔다. 저도 모르는 새에 복화술을 익혔었나 하는 병신같은 생각을 하기보다는 그저 본인만 있을 줄 알았던 정류소에 다른 누군가가 서있는 것을 눈에 담았다. 마른 가지처럼 길쭉한 남자가 정류소 칸막이 밖에서 담배를 꼬나물고 있다. 무언가를 웅얼거릴 때마다 입에 물린 담배가 흔들거리며 푸스스 재를 떨구었다. 아직도 서울 길 한복판에서 담배를 피우는 또라이가 있네. 그것도 젊은.
드라이를 한지 얼마 되지 않은 코트에 냄새가 배일까싶어 슬쩍 쳐다보자 입김에 섞인 뿌연 연기가 저와는 반대편으로 흘러가며 흐트러진다. 저한테 피해를 끼치지만 않는다면 담배가 아니라 마약을 해도 상관이 없었다. 볼을 홀쭉하게 빨아들이며 대를 빠르게 태우는 남자에게서 시선을 떼었다. 정류장 전광판 위로 버스번호가 드문드문 흘러나오고 있었다.
"10분? 장난하냐."
배차간격 한번 개같네. 근처에 편의점도 없는 정류소에서 적지 않은 시간을 보내야한다는 사실에 주머니에 놓인 핫팩을 주물렀다. 아직 온기가 남아있는 것에 위안 아닌 위안을 받으며 주위를 둘러보지만 잠깐 들어가 있을 법한 건물은 눈을 씻고 찾아봐도 없었다. 어쩔 수 없지. 바람이라도 피하자 싶어 정류소 칸막이 바깥으로 몸을 빼내었다. 어쩐지 왜 정류소 바깥에서 담배를 빨고있나 했더니 이 곳이 그나마 바람이 덜 부는 듯 하였다. 필터밖에 남지 않은 대를 자근자근 씹으며 담배갑을 꺼내는 남자의 옆으로 가서 섰다. 담배냄새가 신경쓰였지만 다행히도 이번 거래처 대리새끼는 골초 중에 골초였다. 남에게 묻히고 들어오는 담배냄새는 그 대리새끼 담뱃내에 모조리 묻힐 정도로.
"아 존나 버스 안오네."
아까부터 남자는 제가 하고싶은 말을 대신해주고 있었다. 입 더러운 새끼들끼리 생각하는 것도 비슷한가. 저만큼이나 언어생활이 바르지 않아보이는 남자를 흘깃 쳐다보았다. 물고 있던 필터를 빼내고 새로운 대를 꼬나무는 눈동자와 잠시 마주쳤지만 저나 남자나 딱히 별다른 제스쳐를 취하지 않았다.
뒷주머니에서 라이터를 꺼낸 남자가 틱, 하고. 싸구려 라이터의 부싯돌을 돌리자 조그맣게 불이 올라왔다. 갈색으로 꽉 차있던 몸체가 주황빛으로 타들어가며 불이 붙는 것이 보였다. 한모금만에 반이나 빨아들인 담배에는 아슬아슬하게 형태를 유지하는 재가 달려있었다. 후우. 한껏 들이쉰 니코틴연기를 내뱉으며 담배를 집는 손가락이 유난히 길었다.
"시발 추..."
"어."
"...어"
아마도 추워. 라고 말하려고 했을 입이 닫혔다 이내 얼빠진 소리를 내었다. 제 코트 위로 날아든 불씨에 저와 남자가 가만히 코트와 담배를 번갈아 쳐다보다 이내 서로의 얼굴을 마주하였다. 이 시발 골초새끼가.
"이, 시발. 개새끼야."
"뭐?"
금새 사그라진 불씨 위를 쓸자 코트에는 남아있는 자욱이 선명하였다. 아, 진짜 개시발. 성대를 타고 나가는 말은 평소와 같이 뇌를 거치지 않았으며 사실 딱히 필터처리를 할 필요성도 느끼지 못하였다. 개의 새끼라고 명명받은 남자가 황당한 듯 담배를 떨구며 머리를 쓸었다. 덥수룩한 머리 사이로 반듯한 이마가 보였다 이내 다시 머리카락 밑으로 사라지었다.
"정류소 근처에서 담배피는 또라이 새끼가."
"뭐라는거야, 미친 놈이."
"뒈지고 싶으면 곱게 골방에서 줄담배나 피워가며 폐암이나 걸릴 것이지 밖으로 기어나와서."
"허어."
"일하러 가는 성실한 직장인을 엿먹이고 지랄씹창이야. 버러지가."
와, 이새끼 말하는거 봐라? 제 말에 약이 올랐는지 떨군 담배를 운동화 뒷축으로 짓이기는 남자를 무시하고 시계를 보았다. 회사 들려서 예비 코트로 갈아입고 나가는 선택지는 완전히 아웃. 바로 버스타야 여유있게 도착할 수 있는 시간이었다. 야, 시발 무시하냐? 저를 툭툭치는 남자의 손등을 적지 않은 힘으로 쳐내자 깡마른 사내가 비틀거렸다.
"시발새끼가 잘못했으면 사과부터 하지않고."
"이거 진짜 미친 새끼아냐?"
"아, 시발 버스오네."
"뭐?"
야, 골초폐인새끼야. 시간없어서 봐준다. 바로 제 앞으로 정차한 버스에 오르며 가운데 손가락을 들어올렸다. 벙찐 남자의 얼굴은 출입구가 닫힐 때까지 계속 되었다. 이, 존나 시발 미친 또라이가!! 출발하는 버스 너머로 아마도 남자의 것일 목소리가 멀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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